“웹3에서 만큼은 지지 않겠다라는 것이 일본 정부의 생각입니다”

지난달 13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게임사 타운홀에서 만난 일본 오아시스의 도미닉 장 사업개발총괄 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장 이사는 기자와 함께 한 시간 가량 영상 인터뷰 촬영을 진행했다.

인터뷰가 있기 이틀 전 서울 신라호텔에서는 ‘쟁글 어돕션’ 행사가 열렸다. 일본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 오아시스는 일본 블록체인 시장과 오아시스의 서비스를 주제로 발표했다.

행사 발표와 인터뷰 내용은 비슷했다. 일본의 정책 기조 변화에 따라 웹3를 필두로 차세대 성장 동력원을 찾고 있고, 여기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 지식재산권(IP)과 대기업 그리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기시다 정부의 기조가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이날 장 이사와의 인터뷰를 기점으로 일본 시장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블록체인-크립토 시장은 더 이상 선도자 입장이 이미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미닉 장 오아시스 사업개발총괄이 블록미디어와 인터뷰를 했다 [사진=블록미디어]

◇ 일본은 이미 크립토 대국이었다= 스무살의 비탈릭 부테린이 이더리움(2015년 7월30일 출시)을 만들기 1년 전 일본에서는 마운트곡스(Mt.Gox)라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역사에 기록될 크립토 사고를 일으키고 있었다. 당시 마운트곡스 거래소는 해킹을 당하면서 비트코인 약 85만 개를 도난당했다. 시가로 약 5억 달러, 우리 돈 6000억원 규모의 큰 규모였다.

사실 말이 85만 개이지, 생각해보면 85만 개의 비트코인은 유례 없는 수량이다. 이는 2014년 기준 전체 비트코인 유통량의 7%에 달하는 것이었다. 올해 6월 기준 글로벌 단일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비트코인을 갖고 있다는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보유량이 약 15만 개이며, 테슬라의 추정 보유량은 1만 개가 채 되지 않는다.

이처럼 일본 마운트곡스는 2010년대 초반 전세계 최강의 암호화폐 거래소로 이름을 날렸다. 2013년 7월 당시 전세계 거래소 BTC 마켓 거래량 점유율을 보면, 마운트곡스의 BTC-USD 마켓 점유율은 52%에 달했다. 유로화 마켓을 더하면 점유율은 58%에 달한다. 이런 점유율을 보유한 암호화폐 거래소가 허무하게 파산하면서, 일본 크립토 시장은 ‘대 규제의 시대’로 돌입한다.

2013년 마운트곡스의 BTC마켓 점유율은 절반을 넘었다 [자료=블록미디어]

한편으로는 어쩌면 일본 정부는 마운트곡스 사건으로 인해, 매우 이르지만 확실한 교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일본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관리를 금융청에서 담당하도록 지정했다. 또 금융청이 거래소 사업자들을 모아 만든 규제 기구를 통해 코인 상장을 승인하도록 했다. 또 고객 신원 확인, 자산의 분리 보관 의무화 등의 조치를 단행했다. 철저하게 사고 방지와 투자자 보호 조치에 방점을 찍은 규제 장치였다.

이러한 조치는 추후 2022년 11월 FTX 파산 사태 때 빛을 발하게 된다. 일본 금융청은 FTX의 고객자산 보호 없는 회사의 매각을 막아섰고, 분리되어있던 자산(콜드월렛과 신탁 계좌)를 통해 일본의 FTX 피해자에게 원금을 돌려줬다. FTX가 파산보호 신청을 한지 단 2개월 만의 일이었다.

물론 그 마운트곡스 사태 이후에도 코인체크 거래소의 해킹을 비롯한 잡음은 계속됐다. 그런 중에 일본은 자금결제법상 암호화폐를 법률상 재산으로 인정하고 결제 기능을 살려냈다. 일본의 일부 상점에서는 공식적으로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다.

◇ 양날의 검이 된 투자자 보호= 마운트곡스 이후 생겨난 일본의 확실한 규제는 피해자를 최소화했다. 다만 시장과 산업의 발전까지 동시에 도모하기는 어려웠다.

일본은 암호화폐를 다루는 산업을 ‘적합자 지정(화이트리스트) 업종’으로 다루면서, 지급결제 서비스에 준하는 강력한 규제를 펼쳤다. 또한 토큰 발행자는 미실현 이익에 대해 30%에 달하는 법인세를 납부하도록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블록체인 사업을 하기 위해 토큰을 발행하고 일정량을 재단이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본에서는 이에 대한 막대한 법인세로 사업을 펼치기 전에 도산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암호화폐 매매 등으로 발생하는 양도 차익 소득에 대해서는 최대 55%에 달하는 세율을 적용했다. 사실상 투자와 사업, 거래 모두가 어려운 시장 환경을 일본 정부가 직접 조성했다.

도미닉 장 오아시스 이사는 “과한 법인세로 인해 대부분의 일본 크립토 개발자들이 사업을 포기하고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말했다.

◇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 2022년= 2022년은 전세계 암호화폐 시장에 있어서, 크립토 윈터가 미풍에서 약풍으로 혹은 강풍으로 바뀔 가능성을 체감한 시기였다. 2021년 말 상승장의 달콤함을 잊지 못한 상황에서, 시장은 5월의 테라-루나 사태, 11월 FTX 파산 사태로 상-하반기 원투펀치를 얻어 맞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각국 정부는 블록체인 산업의 발전과 투자자 보호의 저울추 사이에서 투자자 보호, 즉 규제를 통한 불안요소 억제를 선택했다.

하지만 일본은 갈라파고스 문화의 나라답게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전세계가 긴축 모드로 돌아선 상황에서 혼자의 길을 걷던 일본 금융 정책이 엿보이는 순간이다.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취임한 이후 블록체인 산업 육성에 시동을 걸었다. 일본 국세청은 암호화폐 발행자의 미실현 수익 과세를 철회했다. 소득세 개정에 따라 최대 55%였던 양도 차익 소득세도 20%로 줄였다.

도미닉 장 이사는 “자민당이 장기간 집권하면서 총리마다 정책 아젠다가 각기 다르다”라며 “기시다 총리는 블록체인과 웹3, 인공지능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2년 기시다 총리가 소속된 자민당이 직접 웹3전략 관련 NFT백서를 출간한데 이어 올해에는 새로운 웹3 백서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일본 웹3.0 백서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세제 문제부터, 토큰 상장의 심사와 취급 규칙, 유통 방법 그리고 NFT에 대한 활용처 등 개선점과 필요 요소가 빼곡히 적혀있다. 종국에는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법률적인 불확실성을 제거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특히 여기에는 웹3.0 활성화 과정에서 제도와 법률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측과의 상담을 통해 혜택 부여 가능성을 열어두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은 금융청 산하에 블록체인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사업 형태에 국한되지 않고 웹3 및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일원화’된 창구에서 알려주는 것이다. 사업 형태별로 담당 부처가 여러 곳인 우리나라의 현실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한편 백서를 열어본 우리나라 업계 사람들도 사뭇 놀라는 분위기다.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한 달 동안 도쿄에서 머물며 현지 미팅을 해온 언디파인드랩스의 조동현 대표는 “일본 공무원들이 크립토 공부를 엄청나게 한 것이 눈에 보인다”라며 “일본 크립토 행사에 정부 관계자들이 나와 사업 현황과 정책을 홍보한다”고 설명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자국에서 열린 크립토 행사에 등장했다 [사진=IVS]

그는 “우리 정부의 공약집에도 디지털 금융 활성화 대목이 있지만 실행되고 있지 않다”라며 “빨리 확실한 가이드를 줘야만 일본에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일본이 하고 싶어하는 것은 ‘웹3 대국’=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한 도미닉 장 이사의 소속사 오아시스는 게임 특화 블록체인 플랫폼 회사다. 한마디로 게임 업체들은 게임을 만들고, 오아시스가 그 게임을 탑재할 수 있는 블록체인 레이어를 만드는 것이다.

기존에는 게임 개발사가 블록체인과 게임을 동시에 만들고자 했지만,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결과만 얻어왔다. 이에 오아시스와 같은 블록체인 메인넷이 등장했다. 오아시스는 현재 반다이 남코, 세가, 스퀘어에닉스, 유비소프트를 비롯해 넥슨, 넷마블, 컴투스, 네오위즈, 위메이드 등 굴지의 대형 게임사를 파트너(노드 검증자)로 두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웹3.0 전략은 오아시스의 파트너십 리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전적이지만 확고한 지식재산권을 통해, 시장을 선도한다”라는 것이다.

장 이사는 “전자왕국 시절 웹1.0 시절을 회상하듯이, 웹3.0는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소닉의 세가, 철권과 건담의 반다이 남코, 파이널 판타지의 스퀘어 에닉스 그리고 대기업 NTT도코모의 블록체인 프로젝트까지. 한국은 금융 기반의 크립토 시장이 열린 반면 일본은 IP 대국으로서의 장점을 부각하는 웹3.0으로 간다는 설명이다.

장 이사는 “지금까지는 일본의 규제가 강했던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의 규제가 없었던 것”이라며 “”2023년 하반기는 일본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시장 상황을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