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 끝난 사토시 나카모토의 '신사협정'

logo
돈이 되는 좋은 글

실패로 끝난 사토시 나카모토의 '신사협정'

'작업증명(PoW)' 방식의 채굴이 무한 장비 경쟁 촉발
비트코인 채굴 전력 소비, 노르웨이 전체 사용량 능가
채굴자 신사협정 기대는 무산…친환경 채굴 방식 찾아야

​(한나 EPA=연합뉴스)아이슬란드의 암호화폐 채굴회사

'채굴기'의 끝 없는 발전, 개발자의 의도였을까

비트코인을 만든 나카모토 사토시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함은 비트코인의 등장 이후로 많은 미디어의 단골 관심사였다. 그러나 정작 사토시가 만들려고 했던 비트코인의 비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코인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많지 않다. 물론 매우 간명하고 명료한 비트코인 백서는 중앙화된 기관에 의존하지 않는 p2p 디지털 캐시 시스템을 만들고자함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암호학적인 메커니즘으로 '작업증명(Proof of Work, PoW)'에 기반한 블록체인을 제안했다. 

그런데 이 작업증명 방식의 메커니즘이 글로벌한 초대형 산업으로 발전하고, 많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결부되면서 점차 특권화되고 급기야 물신화되기에 이른다. 작업증명 방식이야말로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메커니즘이며 암호화폐의 가치를 생성하는 절대적인 원천이기도 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코인계의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코인 가격의 상승과 비례해서 증가하는 막대한 에너지의 소모에 대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비트코인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반란으로 보고 일체의 근본적인 해결 시도를 극도로 배제하게 된다.  

하지만 과연 사토시는 비트코인 채굴자들이 이렇게 중앙화되고 독점적 경제적 이해로 똘똘 뭉친 거대한 배타적 집단으로 성장하는 것을 처음부터 기획했던 것이었을까?

사토시가 백서를 발표하고, 초기에 많은 활동을 했던 커뮤니티의 글들을 읽어 보면 사토시의 비전은 이러한 초대형 독점적 채굴집단을 옹호하고자 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사토시가 신사협정이라는 말로 표현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번 살펴 보자. 

“하루에 네트워크 전체에서 만들어지는 평균 총 코인량은 일정하다. 빠른 채굴기는 느린 채굴기보다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만일 모든 사람이 빠른 채굴기를 구입한다면, 이들은 이전보다 조금도 더 채굴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네트워크 이익을 위해 'GPU(그래픽 처리 장치)' 성능 경쟁을 최대한 연기하는 신사협정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사용자가 GPU 드라이버와 호환성 문제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이 빠르게 설정할 수 있다. 누구나 'CPU(중앙 처리 장치)'만으로 지금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작업증명은 블록체인의 블록을 생성하는 권리를 소수의 중앙화된 주체가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소수의 중앙화된 주체가 블록을 생성하면, 이들이 담합해서 장부 데이터의 조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많은 참여자가 블록을 생성하고, 누가 블록을 생성할지 미리 알 수 없게 하는 것이 이러한 담합을 막기 가장 좋다. 작업증명은 각자 블록체인 프로토콜이 설정한 연산문제를 풀어 그 답을 먼저 찾은 사람이 블록을 만들 권리를 획득하도록 한다.

의미없는 무한 경쟁, 블록 생성 능력 제한 필요 

만일 참여자 모두 동등한 연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동등하게 블록생성에 기여할 수 있고, 동일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문제는 누구나 동일한 연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하루에 채굴할 수 있는 블록의 수는 프로토콜에 의해 일정한 수가 되도록 정해져 있고, 각 블록당 보상으로 주는 코인수도 정해져 있다. 따라서, 하루에 채굴할 수 있는 코인수는 정해져 있으므로, 누가 더 많은 코인을 가져갈지는 순전히 각자의 연산능력에 의존하게 된다.

당연히 더 많은 코인을 얻기 위해 더 뛰어난 연산능력을 가진 컴퓨터 또는 채굴기를 투입하게 된다. 그런데 모두가 동일하게 더 좋은 채굴기를 투입하면, 결국 각자가 가져갈 수 있는 몫에는 변화가 없게 된다. 무한 경쟁을 부추키게 되지만, 결국은 모두 동일한 양의 코인을 채굴할 수 밖에 없게 된다면, 이렇게 무한 경쟁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바로 사토시가 신사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배경이다. 

고성능 장비를 가진 사람만이 채굴할 수 있다면, 새로운 참여자는 이러한 장비를 마련하고 셋업을 하느라 높은 진입장벽이 생기게 되고, 이것은 결국 작업증명이 노리는 탈중앙화된 블록 생성 메커니즘을 장려하기 보다는, 역으로 중앙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사토시의 신사협정은 CPU만으로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있었는데, GPU가 들어오면 불필요한 경쟁으로 신규 참여자만 못들오게 하는 꼴이 되니 GPU로 채굴하는 것을 참여자의 합의로 가능한 한 지연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사토시의 신사협정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얼마가지 않아 CPU가 아닌 GPU 경쟁 전성 시대가 되었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GPU보다 수십배가 빠른 FPGA가 등장하고, 이것보다 더 빠르고 전문화된 ASIC 경쟁으로 치다른다. 단순히 더 빠른 장비 경쟁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규모의 집중화와 독점화 또한 가속화된다. 

소규모의 가내 수공업형의 채굴자는 대부분 도태되고,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와 장비를 갖춘 대형 채굴자들이 대부분의 블록생성을 담당하게 된다. 이에 따라 비트코인의 소유구조 또한 매우 중앙화된다. 비트코인의 가격을 움직이는 것은 큰 그림에서 보면 사실상 이 채굴자들이다. 이들의 이권에 동참한 금융자본의 지분이 조금씩 커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채굴자들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비트코인의 전기량, 이대로 괜찮을까?

애초에 기획한 탈중앙화된 블록생성 메커니즘이라는 목적에도 위배되지만, 현재의 작업증명 방식의 채굴은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채굴장의 지역 편중이 심하다. 중국이 65%가 넘는 지분을 가지고 있고, 미국이 7.24%, 러시아 6.9%, 카자흐스탄 6.17%, 말레시아 4.33%, 이란 3.82% 등이 주요 채굴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적 편중 문제는 블록체인의 탈중앙성에 매우 심각한 위협이 된다. 중국 정부의 채굴장 금지나 통제 관련 뉴스가 나올 때 마다 비트코인이 급락하는 이유이다. 대규모 장비와 시설로 구성된 채굴장을 하루 아침에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력 시설의 구축 또한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

비트코인 채굴에 쓴 전력량이 노르웨이 전체 전력사용량보다 많다


비트코인 채궐에 쓰인 전력량이 노르웨이 전체 전력사용량보다 많고 방글라데시 전력 사용량의 두 배에 달한다. / 스타티스타
비트코인 가격 상승과 함께 정비례해서 증가하는 채굴 사용 전력량의 급격한 증가는 국가별로 채굴장 봉쇄를 해야 하는 명분에 이용되기에 충분하다. 정부가 이들 채굴장을 찾아내서 봉쇄하는 것도 너무나 쉬운 일이다. 직접 가보지 않아도, 항공 사진만으로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대형 규모인데다, 당장 사용하는 전력량만 체크해봐도 금방 다 파악된다.

비트코인 신봉자들은 중국에서 금지 당하고 나면, 미국으로 옮기면 된다고 한다. 그럼 미국은 언제까지 이 채굴장들이 자유롭게 에너지를 갖다 쓰게 놓아둘까? 얼마전 텍사스에 전기 공급 부족으로 난리가 났을 때, 이 곳에 있던 비트코인 채굴업체들은 한 동안 전원을 켤 시도조차 못했다. 그랬다가는 당장 여론의 뭇매를 맞고 폐쇄조치를 당했을 것이다. 

비트코인 채굴장의 극심한 지역적 편중과, 물리적 채굴 해시 파워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때문에, 앞으로도 전력난을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규제로 인한 리스크가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테헤란 AFP=연합뉴스) 정전사태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에서 23일(현지시간) 교통신호등마저 꺼져 심한 교통체증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란 당국은 강수량 부족으로 수력발전에 차질이 빚어지고, 기온이 오르며 전력수요가 많이 늘어난데다 음성적으로 운영되는 암호화폐 채굴로 막대한 양의 전력이 소비되고 있는 탓에 전력부족이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란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오는 9월 22일까지 암호화폐 채굴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비트코인 작업 증명에는 막대한 전기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고,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친환경 지향 산업 구조로의 전환 분위기에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설 수 밖에 없다. 이미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고 있는 전력량이 노르웨이 또는 말레이시아 국가 전체가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다는 통계가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하면, 이러한 사용량은 정비례해서 계속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느 수준까지 독점적 채굴집단의 무한 장비 경쟁에 이용되는 전기 사용량을 허용해야 하는 것일까? 비트코인의 작업증명 채굴이 가져다 주는 효용에 비해 그것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비용의 비중이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고, 결국은 그 절대적 한계 지점에 이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최근 비트코인의 채굴에 사용되는 상당부분의 전기가 수력 발전이나 태양광 발전과 같은 재생가능한 소스에 의존한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지도 하지만, 중국 채굴자들의 주 에너지원은 여전히 석탄 발전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생산되는 전체 해시의 76%가 재생 에너지 기반이라고 하지만, 전체 소모되는 에너지 기준으로 보자면 오직 전체의 39% 만이 재생 에너지 기반이라고 한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급격히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비트코인 채굴의 채산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매시간 일정한 양의 전력을 지속적으로 투입할 수 있느냐인데, 대부분의 재생 에너지 기반의 전력 생산은 이러한 요건에 매우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우기와 건기에 따라 심한 편차를 보이는 수력발전이나 낮에만 생산이 가능한 태양광 발전의 경우 채산성을 지속적으로 맞추기가 훨신 더 어렵다. 치열한 장비 경쟁은 대부분의 채굴 장비를 1-2년안에 도태되게 만들기 때문에, 24시간 356일 켜놓지 않으면, 감각상각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  결국 재생에너지 사용비중이 일부 늘어나더라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강력한 경제적 유인이 유지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비트코인이 폭등하는 시기에는 장비 비효율성이나, 에너지 소스의 친환경성 따위는 모두 뒷전이 된다. 모든 에너지 소스와 장비를 총동원해서 채굴에 투입하는 것이 무조건 이득이 되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시간안에 생산살 수 있는 화력발전의 이용도는 더 급증할 수도 있다. 
 
물론 비트코인의 작업증명 채굴방식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식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비용의 지불이 불가피하다고 변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이더리움과 같은 블록체인은 무한대의 하드웨어 경쟁에 의한 폐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지분 증명(Proof of Stake, Pos)' 방식의 블록생성 메커니즘을 수 년 동안 연구 개발해오고 있다.

지분 증명 방식의 메커니즘이 과연 탈중앙성을 제대로 지탱할 수 있을지, 무엇보다도 안전한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평가를 해 보야할 과제인 것은 틀림없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중요한 것은 작업 증명 방식의 시스템이 많은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 문제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이다. 

나카모토 사토시가 신사협정을 이야기 하던 때가 불과 1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GPU의 도입마저 최대한 막자고 하던 그가 지금 중앙화된 초대형 독점 채굴업자들의 기득권 보호막이 되어버린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 메커니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가 너무 나이브하고 순진한 엔지니어에 불과했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이루려고 했던 탈중앙화된 가치 네트워크라는 비전만큼은 여전히 모든 블록체인 생태계의 근본적인 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더 진전시키기 위해 우리는 이제 작업 증명을 극복해야 될 시점이 된 것이다.

출처 : 팩트경제신문(http://www.facten.co.kr) 
0 Comments
제목

카테고리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