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클레이에는 없고 비트코인에는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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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A to Z]- ‘창조자’ 사라진 것이 비트코인의 가장 강력한 점…‘글로벌 네트워크’ 더 확장된다



[한경비즈니스 칼럼 =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디지털 자산팀 과장, ‘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가 최근 디지털 자산 지갑 ‘클립’을 야심차게 출시했다. 유저들은 카카오톡의 ‘더보기’ 탭에서 클립을 설치할 수 있고 보상으로 50클레이(그라운드X의 유틸리티 토큰, 출시일 기준 약 8000~9000원)를 받았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의 인프라와 깔끔한 사용자 경험(UX)과 사용자 환경(UI) 덕분에 클립은 출시 하루 만에 1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다.

현재 글로벌 상위 디앱(dapp)의 사용자가 1만 명 이하인 점을 고려하면 이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네이버와 함께 한국의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인 카카오의 자회사답게 향후 그라운드X와 클레이가 디지털 자산·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선전하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업계에 많은데 필자도 그중 한 명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라운드X가 클레이 거래소 무단 상장 이슈(코인원·지닥·데이빗 거래소가 그라운드X와 합의 없이 클레이를 상장하며 불협화음을 일으킴)로 진통을 겪으며 기업이 주도하는 허가형 블록체인(permissioned blockchain)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규제의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대표적인 무허가형 블록체인(permission-less blockchain) 비트코인에는 있는 규제로부터의 자유·중립성·글로벌 생태계 등과 같은 장점이 카카오 클레이에는 없다. 이는 비단 카카오의 문제뿐만 아니라 비슷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페이스북·네이버-라인·텔레그램 등에도 해당된다.

원칙적으로 거래소는 양질의 프로젝트를 발행 주체의 허가 없이 상장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블록체인의 원래 철학이다. 실제로 과거에 거래소들이 이더리움을 상장하는 데 이더리움재단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상황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사실 그라운드X가 여타 거래소의 클레이 무단 상장에 난색을 표하는 것은 십분 이해가 가는 일이다. 왜냐하면 기업은 규제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기업과 고객의 돈을 취급하는 금융업은 더욱 그렇다.

그라운드X의 모회사인 카카오는 IT 사업뿐만 아니라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와 같이 금융업으로 보폭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라운드X는 규제 당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아직 가상 자산이 제도권으로 완전히 편입되지 않았고 클레이의 가치는 리브라와 같은 여타 스테이블 코인처럼 고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국내 거래소에 클레이가 상장되고 가격 변동성이 커져 투기 우려를 낳아 규제 당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그라운드X에는 그다지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이와 같은 규제 이슈는 그라운드X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한 페이스북은 현재 각국 규제 당국과 소통하며 리브라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전폭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또 카카오 클레이와 비슷한 톤(TON) 프로젝트를 계획하던 텔레그램 역시 미국에 규제의 철퇴를 맞고 해당 프로젝트를 중단한 상황이다.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와 달리 비트코인은 상대적으로 규제의 영향에서 자유롭다. 왜냐하면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분산화돼 있어 단일 실패점(single point of failure)이 없고 법적 책임을 물을 주체 또한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유럽·중국 등과 같은 국가들은 이미 비트코인을 완전히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양성화하는 방향으로 규제의 방향을 정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사토시 나카모토나 비트코인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각국 규제 당국에 대관해 얻어낸 결과가 아니다. 비트코인의 가장 큰 혁신성 중 하나는 바로 비트코인의 창조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부재다. 만약 사토시 나카모토의 존재가 밝혀졌다면 이미 예전에 그는 미국 법정에 서고 제재를 받았을 것이고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이렇게 커지지 못했을 것이다.

◆글로벌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오픈 소스


지난 3월 그라운드X가 운영하는 블록체인 메인넷이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라운드X 측은 블록 생성이 멈춘 시점에서 10시간 정도 지난 후 공지 사항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전했고 신속하게 대응해 오류를 수정했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클레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로지 한국의 그라운드X와 관계사들뿐이다. 그라운드X와 파트너십을 맺지 않은 해외 블록체인 회사와 그라운드X의 경쟁사는 클레이의 문제 해결과 생태계 확장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상황이 다르다. 전 세계 개발자, IT 기업, 벤처캐피털, 금융회사, 채굴 기업, 거래소 등이 합심해 비트코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 어떤 주체도 독자적으로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명운을 결정짓지 않는다. 이것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해당 기업들과 제휴하거나 투자를 받아 나온 결과가 아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 특유의 리더십 부재가 오히려 중립성으로 발현돼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의 수요를 충족시켜 합의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글로벌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오픈 소스 비트코인의 강점이다.
현재 카카오뿐만 아니라 다양한 글로벌 IT 기업들이 디지털 자산·블록체인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네이버-라인은 그라운드X의 클레이와 비슷한 링크를 발행했고 페이스북은 규제 당국과 소통하며 리브라를 준비하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텔레그램은 규제의 철퇴를 맞고 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할 예정인 중국은 자국의 화웨이·알리바바·텐센트 등을 활용할 예정이다.

해당 프로젝트들은 모두 국가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허가형 블록체인에 기반한 것으로, 국가 간·기업 간 이해 상충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제한적인 확장성을 지닐 공산이 크다. 자체 토큰을 발행하지 않고 무허가형 블록체인에 기반한 서비스에 주력하는 주요 기업들은 마이크로소프트·삼성전자·트위터·스퀘어·레딧 정도다.

앞으로 누가 디지털 자산·블록체인 생태계를 선점할지는 모른다. 비트코인이 ‘돈의 인터넷’이고 여타 기업들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디지털 토큰 등은 ‘돈의 인트라넷’으로 기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본 기고는 회사의 공식 의견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2호(2020.06.20 ~ 2020.06.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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