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바람 또다시...2030은 왜 흔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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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29. 오전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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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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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친 불장이네요. 조정없이 가니까 무서워요”, “코모도(코인) 끝냈습니다. 바보같이 그렇게 당해 놓고도 올라가는 거 보면 사고 싶네요.” 11월 24일 코인 투자 단체 대화방에서 오간 대화다. 11월 들어 비트코인 거래가는 국내 기준 1400만원에서 2000만원대까지 뛰었다. 비트코인 가격이 2000만원을 돌파한 것은 2017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대장’ 뒤를 따라 알트코인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코인 판에 다시 돈이 몰린다. 11월 24일 국내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의 24시간 거래량은 1조7000억원을 돌파했다. 같은 시기 주식시장에서 암호화폐 관련 테마주도 일제히 상승세를 보였다. 온라인 커뮤니티 내 암호화폐 게시글 리젠 속도도 덩달아 빨라졌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검색 빈도를 계량화한 네이버 트렌드 지수에서 비트코인은 지난 24일 올해 최고치 100을 기록했다. 2018년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에게 ‘돌덩어리’라고 불렸던 암호화폐의 겨울이 끝난 것일까.

AFP연합뉴스

■제도권 근접한 암호화폐

비트코인은 왜 올랐나. 기폭제가 된 것은 세계 최대 간편결제 업체 페이팔의 발표다. 지난 10월 페이팔은 26000만개 가맹점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를 이용한 결제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페이팔의 발표 이후 비트코인의 시세는 10%가량 급등했다. 글로벌 금융기업과 기관투자자들의 친 암호화폐 행보도 비트코인 상승세를 부채질했다. 2017년 최고 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의 입을 빌려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했던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지난달 ‘비트코인은 금의 경쟁 상대’라며 ‘밀레니얼 세대 덕분에 비트코인은 장기적으로 가격 상승 여력이 크다’고 재평가했다. 최근에는 대형 자산운용사 펜달그룹이 비트코인에 선물 투자를 결정했다. 기관투자자와 글로벌 기업의 행보와 함께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시중 자금이 암호화폐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암호화폐 자산 대중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가상자산이 제도권으로 한걸음 더 들어왔다는 것이다. 박성준 동국대 교수(블록체인연구센터장)는 “전에는 암호화폐의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정책적으로 혼란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존의 혼란이 상당 부분 정리됐다”며 “암호화폐가 건전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블록체인이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중간중간 조정은 되겠지만 비트코인 가격은 장기적으로 우상향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국내 코인 투자의 수요확대도 암호화폐 가치 재평가에 따른 것일까. 홍기훈 교수(홍익대 경영대)는 현재 국내 암호화폐 바람은 투기 성격이 짙었던 2017년 코인 열풍과 성격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경기 불황으로 고위험 고수익 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일 뿐 암호화폐의 내재적 가치를 염두에 둔 투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주식 투자 열풍과 맞물려 카카오·빅히트 공모주 청약 등 잇따른 기업공개(IPO)가 대중의 투기 심리를 자극해 코인 투자에 바람을 불어넣었다고 분석했다. 홍 교수는 “코인 시장 자체가 2017년 ICO(암호화폐 공개) 열풍 당시와 달라지지 않았고 참여자도 이전과 같다”며 “목돈이 없어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지 못하고 부동산 투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뛰어들 대상을 찾다가 안착한 대상이 코인일 뿐”이라고 말했다.

경향DB

고수익 고위험 자산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누구일까. 2017년 코인판의 주요 플레이어는 20·30 청년층이었다. 투자 금액은 고연령대가 높았지만 암호화폐 구매 경험비율은 연령대가 낮을수록 높았다. 2018년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의 암호(가상)화폐 구매경험 설문조사에 따르면 암호화폐 구매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0대가 22.7%로 가장 높았고, 30대 19.3%, 40대 12.0%, 60대 10.5%로 나타났다. 20·30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자기과신 성향이 높고 재무적 자기효능감으로 인해 고위험 자산인 암호화폐 등에 투자하는 경향이 높다. 인터넷에 익숙해 암호화폐에 대한 접근도 쉽고 빠르다.(밀레니얼 세대와 X세대, 86세대의 금융상품 보유 행동, Financial Planning Review)

■여전히 가치투자 어려운 코인

지금도 ‘코인’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계층은 20·30이다. 20·30이 암호화폐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동학개미 운동으로 한국 증시 투자 열풍에 중심에 선 이유와 다르지 않다. 한국사회의 노동시장 이분화는 심화됐고 불안정 노동은 확산되고 있다. 청년(25~29세)고용률은 지난 8월 10년 10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할 기회도 없고 일을 한다고 해도 노동 소득으로는 안정적인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집값 상승률은 임금 상승률을 뛰어넘는다. 평생 일해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없는 처지다. 20·30이 처한 환경은 2017년보다 악화됐다. 일해서는 계층 사다리를 오를 수 없는 세상이 뉴노멀이 됐다. 살아남으려면 ‘한방’이 필요하다.

암호화폐 투자는 주식, 부동산에 비해 손쉽다. 주식은 ‘장기간 공부’가 필요한데다 공모주 청약과 같은 큰 판은 거액의 증거금이라는 제약이 있다. 투자자산이 필요한 부동산은 더 어렵다. 현실에서 ‘영끌’을 통한 주택 구매와 부동산 재테크는 소득과 자산을 축적한 청년세대 상위 20%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특히 20대의 경우 소득 상위 20%라 할지라도 순자산이 없어 주택 구매에 뛰어들지 못한다. 주택 구매가 가능한 20대는 부모로부터 수억원의 증여를 받은 소수에 불과하다.(‘영끌’하는 20·30세대와 1가구1주택 소유 체제, 한국도시연구소)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영끌’할 수 있는 계층은 20·30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하다”며 “‘패닉바잉’도 불가능한 청년들은 계층 이동을 꿈꿀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투자를 하고 있는 대학생 노정현씨(26)는 “암호화폐가 제도권으로 진입했고 코로나로 비대면 경제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암호화폐는 20대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말했다. 노씨는 “지금 20대는 SNS나 유튜브에서 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세대다. 부에 대한 욕구는 큰데 노동으로는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으니 다른 자산 증식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일 뿐 투자 행위 자체를 나쁘게 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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