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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만원에 샀는데 2년후 1억1500만원 됐다…`도도새` 열풍이 뭐길래

이한나 기자
입력 : 
2022-02-25 16:58:36
수정 : 
2022-02-25 23: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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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unday on La Mauritius. [사진 제공 = 서울옥션]
2019년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약 540만원(3만5000홍콩달러)에 팔렸던 작품이 지난해 9월 서울옥션 경매에 다시 나와 1억1500만원에 낙찰됐다. 2년여 만에 똑같은 작품 값이 20배나 껑충 뛴 것. 이 작품은 김선우 작가(34)의 'A Sunday on La Mauritius'(130.0×162.0㎝·100호)다. 프랑스 신인상주의 화가 조르주 쇠라의 명작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차용해 재탄생한 그림이다. 이후 도도새 연작들은 경매 추정가 최대치를 뚫으며 잇달아 낙찰됐다. 지난해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는 개막 직후 달려왔는데도 도도새 작품을 놓쳤다며 거칠게 항의한 사람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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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경매가 활성화되고 미술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젊은 MZ(1980~2000년 초반 출생)세대가 새로운 구매층으로 시장에 진입하며 동년배 작가들 몸값이 껑충 뛰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그 열기 한복판에 '도도새' 작가로 유명한 1988년생 김선우가 있다. 그의 그림은 부리가 도톰하고 발이 큰 새들이 열대우림이나 오로라가 펼쳐진 하늘 아래 모여 있는 평화로운 풍경으로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 한 장면 같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도도새는 아프리카 모리셔스섬에 서식하다 1681년 멸종됐다. 천적이 없어 날개가 퇴화한 데다 포르투갈인들이 섬에 도달했을 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도도(바보)'로 불리다 잡아먹혔다. 김선우 작가는 "현대인이 낙원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안주하는 동안 스스로 자유라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씩 뽑아내는 모습이 도도새와 닮았다"고 말했다.

날지 못하는 도도새는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을 상징한다.

2014년부터 새를 매개로 세상의 본질을 탐구해왔던 작가는 2015년 을지재단 일현미술관 지원으로 실제 인도양 모리셔스섬을 방문한 뒤 도도새 연작을 내놓게 됐다. 27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낙원(Paradise)'을 주제로 그린 회화 21점을 선보였다. 3000명 가까이 이 전시에 방문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대형 작품에 한국화 등을 적극 접목했다. 2022년 작품 'Paradise'(227.3×181.8㎝)는 조선시대 왕실 어좌 뒤편 병풍그림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에서 영감을 얻어 낮과 밤이 함께 있는 장면을 그렸다. 2021년 작품 'La Festa(축제)'(181.8×227.3㎝)는 코로나19로 불가능해진 떠들썩한 축제를 담았다. 도도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음식과 소주를 나눠먹거나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이 유쾌하다. 일본 우키요에(목판화) 작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파도'를 오마주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김 작가는 "모리셔스에서 300장 넘는 드로잉을 해왔는데 마르지 않는 샘처럼 아이디어가 솟아나와 계속 그리게 된다"며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강점을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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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판화에서 영감을 얻은 2021년 작품 'The great Wave off Indian ocean'. [사진 제공 = 가나아트]
이 같은 김선우 열풍에 대해 미술계는 시선이 엇갈린다. 젊은 작가가 주요 상을 석권하거나 미술관에서 앞다퉈 소장할 수는 있지만 이처럼 시장에서 환호하는 현상은 이채롭다. 동년배 인기 있는 팝아트 작가도 있지만 이처럼 경매 거래가 활발하거나 작품 값이 고공 행진을 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변화의 단초로 읽는 편에서는 도도새의 쉽고 명료한 시각 언어에 주목한다. 미술사적 가치를 중시하던 기존 수집가층과 달리 한정판 럭셔리 브랜드에 열광하며 되팔기 시장을 키운 젊은 층이 매력을 느끼는 요소다. 또 코로나19를 계기로 집 안 꾸미기와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과도 연결된다. 어릴 때부터 책과 그림을 좋아하고 온라인게임, 여행을 즐긴 김선우 작가는 동년배들이 공감하는 세계관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이진명 평론가(전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는 "서구에서도 주류 미술계 출신이 아닌 뱅크시가 등장해 작품 값이 급등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며 "김선우는 도도새를 통해 문명화의 허구를 드러내고 꾸준히 노력해 발전을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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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작가의 도도새 연작에서 자주 등장하는 풍선과 열대우림이 두드러진 2021년 작품 'The Flying Pianist'. [사진 제공 = 가나아트]
도도새 연작은 MZ세대의 '가치 소비'와도 연결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자 일회용품 안 쓰기나 채식을 실천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열대림 속 멸종된 새는 위기의식에 경종을 울린다. 김 작가는 작년 말 본인 작품을 자선 경매로 내놓고 수익 1억원을 한국세계자연기금(WWF)에 기부했다. 김 작가는 소통의 달인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일찍 시작하고 익숙한 세대답게 책에서 인상 깊은 글귀나 전시 정보, 과거 기억 등을 직접 공유한다. 댓글을 달고 응원해주는 이들에게 감사 인사도 잊지 않는다. 그는 "내 작품이 별로인 것 같아 의심을 많이 하는데 응원을 받으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하루만 쉬고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작업하는 루틴(일상)도 철저히 지켜 동료들이 '예술 공무원'이라고 부를 정도다.

김선우 작가는 경제적 독립을 위해 '공모전 헌터'가 될 정도로 20대를 치열하게 보냈다고 한다. 작품을 캐리어에 들고 참여한 로마와 런던 아트페어에서 이방인들에게 도도새를 설명하며 직접 팔아본 경험도 작업을 이어가는 데 확신을 줬다고 했다. 2019년 프린트베이커리 전속작가가 되며 안정적 작업 기반이 마련됐다.

"공무원이던 부모님이 화가를 직업으로 인정해주지 않아 바로 독립해야 했어요. 작가로서 생존이 시급하다 보니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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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작가
그는 다른 젊은 작가들처럼 전시장을 자주 찾아 관람객들과 인사하고 작품 도록 발간과 사인회 행사도 연다. 일본 팝아트 작가 나라 요시토모를 우상 삼는 작가는 새로운 시도에 거부감이 없다. 한정판 도도새 피규어나 협업 접시, 직접 만든 대체불가토큰(NFT)은 순식간에 완판됐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 중심으로 팬덤도 형성되는 듯싶다. '은근과 끈기'가 장점임을 아는 작가도 오는 4월부터 파리 시테 레지던시에 머물며 새로운 자극을 받고 성장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다만 기존 미술계 시선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2007년 미술시장 호황 때 경매시장에서 너무 떴다가 이제 그 존재마저 미미해진 젊은 작가들의 '데자뷔(기시감)' 때문이다. 경매시장에서 도도새는 추가 상승이 부담되는 수준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국내외적으로 인정받고 화업 50년도 넘는 중견 작가들에 비견할 만한 가격 수준이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데이미언 허스트로 대표되는 yBa그룹처럼 20대 때 두각을 나타내 세계적 전성기를 오래 누린 사례도 있다"면서도 "작가가 더 성장해 국공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야 가격 거품이 아님이 입증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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