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여러분이 수 천만 달러에서 수 억 달러 자산을 운용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돈으로 비트코인을 사야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암호화폐 시장에 기관투자자 자금이 들어온다는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뉴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 3만3천달러 터치…”대규모 OTC 거래 정황”

연말연초 연휴 중일 때도 암호화폐 시장은 돌아갔죠. 비트코인이 3만달러를 훌쩍 뛰어 넘었다는 뉴스가 휴일 단잠을 깨웠는데요. 마침 크립토퀀트의 주기영 대표가 재밌는 트윗을 던졌습니다.

코인베이스에서 3만5000개 BTC가 빠져나온 정황이 있다는 거에요. 이것이 기관투자자들을 위한 OTC(장외시장) 거래가 아닌가 추정하는 트윗과 함께요. 한두 개가 아니라 수 백 개, 수 천 개 비트코인을 매수해야 한다면 펀드매니저는 조용히 협상을 통해 물량을 끌어 모을 것이고, 지갑 간 대규모 이동으로 마무리될 겁니다. OTC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 소식에 안테나를 세울 필요가 있겠습니다.

BTC 4천만원 육박, ETH 1백만원 돌파..”기관 자금이 몰려온다”

이 기사 중에 21쉐어즈의 로렌트 시스 이사의 코멘트가 재미있습니다. “2017년에는 개인이었는데, 지금은 기관투자자다.” 코인데스크와 인터뷰 원문을 보면, 자기 회사가 취급하는 ETP(상장지수상품)에 대한 문의가 여러 패밀리 오피스(Family Office)로부터 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ETP는 일종의 파생상품입니다. 각종 상품 가격에 연동된 금융상품인데요. 예를 들어 금 ETP는 금 가격이 오르면 가격이 같이 오르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ETF(상장지수펀드), ETN(상장지수채권) 등 ‘ET 집안’ 계열입니다. 비트코인을 직접 사는 것을 번거롭게 느낀 투자자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팔고 있는 상품을 사려 한다는 홍보성 멘트를 끼워넣은 것입니다.

21쉐어즈 홈페이지를 가봤어요. 스위스에 기반을 두고 있군요. 취리히, 뉴욕, 베를린에 사무소가 있습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ETP 상품 카타로그를 볼 수 있습니다.

시스 이사가 언급한 ‘패밀리 오피스’도 의미심장합니다. 유럽에서 패밀리 오피스는 부유한 가문, 개인, 기업 등의 재무 업무를 총괄 관리하는 금융서비스업자를 뜻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PB(프라잇뱅킹)인데요. 패밀리 오피스는 훨씬 적극적입니다. 단순히 투자처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세무, 법무 등을 다 포함합니다. 스위스 기반 ETP 회사에 문의를 하는 패밀리 오피스라면 고객들이 VVIP급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반에크, 비트코인 ETF 재추진…SEC에 신청서 접수

ETP가 나왔으니, 비트코인 ETF 얘기를 안할 수 없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단골 손님 반에크가 다시 신청서를 냈다는 기사입니다. 비트코인 ETF은 나름 역사가 깊어요. 2년 가까이 끈질기게 상품 승인을 요청했지만 SEC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솔직히 이번에도 자신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SEC는 왜 비트코인 ETF를 내주지 않는 것일까요? ETF는 ET 집안 계열 중 대중 접근성이 가장 높은 상품입니다. 주식처럼 샀다가 팔았다가 할 수 있으니까요. ETN, ETP도 상장을 전제로 매매가 자유롭지만 이들은 다소 난해한 상품이나 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합니다. 비트코인 ETF가 시장에 풀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죠.

SEC가 이런저런 핑계로 비트코인 ETF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마도 암호화폐 시장과 거래소에 대한 군기 잡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주식 상장을 준비 중인 코인베이스가 리플 거래 중단 등 SEC로부터 점수 따는 것을 보세요.

그런데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습니다. ETF는 개인투자자를 위한 상품만은 아닙니다. 기관들도 ETF 포지션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특히 ETF 전문 대형 자산운용사가 이 시장을 스터디하기 시작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블랙록을 주시해야할 이유…”만약 그가 시장에 뛰어든다면?”

블랙록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입니다. 우리나라 1년 GDP의 거의 5배 규모의 자산을 운용합니다. 블랙록의 전공이 뭐냐. 바로 ETF를 만들어 운용하는 것입니다. 블랙록 대표 래리 핑크는 암호화폐에 친화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블랙록이 블록체인 부문을 담당할 임원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반에크가 블랙록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느낌이에요.

기관이 주도하는 최근 시장에 대한 사족. 블록체인 기술과 비트코인 탄생의 철학적 배경은 ‘탈중앙’이죠. 월스트리트의 탐욕, 그 탐욕을 제어할 수 없는 중앙은행 시스템에 대한 비판에서 비트코인이 탄생했습니다. 월가의 기관 자금이 유입되는 지금 국면에서 탈중앙 이념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앙화된 규제의 힘, 막대한 자금의 힘이 시장을 지배하는듯 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원했던 암호화폐 시장의 기관화가 역설적으로 탈중앙 이념의 끈을 무참히 끊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