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만원이 휴지조각으로… 5분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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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1.28. 오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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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오징어·BTS·머스크...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코인 사기
‘337만원짜리 코인이, 5분 만에 7원으로.’

지난해 10월 미국 가상 화폐 거래소에 오징어를 뜻하는 영어 단어 스퀴드(squid)와 비슷한 ‘스퀴드(squeed)’라는 이름의 코인이 상장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인기가 치솟던 때였다. 개발자들은 달고나 자르기 같은 게임을 하는 데 쓰는 코인이라며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0.01달러로 출발했던 이 코인은 출시 후 가격이 급등해 개당 2861달러(약 337만원)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후 다시 수직 낙하해 0.00079달러(7원)로 떨어졌다. 꼭대기에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5분. 그사이 코인을 개발한 사람들은 210만달러(약 24억원)에 달하는 가상 화폐를 현금화해서 달아났다.

가상 화폐와 관련된 사기가 해마다 늘고 있다. 인기 드라마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인들을 사칭해 투자자를 끌어모았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데이터그룹 체이널리시스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 화폐에 기반해 발생한 범죄 액수는 140억달러(약 16조8000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78억달러)보다 약 80% 늘어난 것이다. 가상 화폐 사기는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가격 올린 뒤 순식간에 ‘먹튀’

오징어코인 사기에는 이른바 ‘러그풀(rug pull)’이라는 기술이 쓰였다. ‘러그풀’은 발밑에 있는 양탄자(rug)를 갑자기 잡아당긴다(pull)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상 화폐 업계에서는 개발자들이 특정 프로젝트를 내세워 투자자를 모은 뒤 갑자기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돈을 들고 사라지는 수법을 일컫는다. 주식시장에서 종종 벌어지는 시세 조작과 비슷하지만, 가격 등락이 훨씬 순식간에 일어난다.

오징어코인의 경우 개발자들이 온라인판 오징어게임 참가비에 사용할 수 있는 코인이라며 꼬드겼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등장한 6개 놀이가 온라인에서 진행되는데, 참가자 가운데 최종 승리한 한 명이 전체 참가자가 낸 돈의 90%를 받아간다고 선전했다. 돈이 모이자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지난해 싱가포르 소재 한 가상 화폐 거래소에는 ‘아미코인(Army coin)’이란 가상 화폐가 등장했다. 인기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아미(ARMY)’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BTS 소속사는 아미코인이 BTS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다. 결국 싱가포르 금융 당국은 작년 12월 아미코인을 상장했던 거래소를 폐쇄했다.

“너만 알고 있어라, 곧 상장된다”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주식시장에 처음 발을 들이는 ‘기업공개(IPO)’처럼, 가상 화폐도 가상 화폐 공개(ICO)가 있다. 이를 미끼로 한 상장 사기도 끊이지 않는다. “코인이 거래소에 상장되면 가격이 폭등하기 때문에 폭등 전 싼값에 미리 사야 한다”며 설득한 뒤 돈을 챙겨 달아나는 방식이다. 가상 화폐 거래소 대부분은 상장할 경우 사전에 계획을 밝히지 않고, 상장 당일 종목과 시간을 공개한다. 공개될 경우 시세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기꾼들은 비교적 유명한 거래소의 이름을 대면서 “너만 알아라. 코인은 곧 상장된다”며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은다. 해당 거래소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상장 계획이 없다”고 대외적으로 알리면, 돈을 챙기고 달아난다.

다단계 가상 화폐 판매 사기도 여전하다. 가상 화폐 판매 모집책이 원금을 보장한다거나 큰 이익을 남겨주겠다고 사람을 끌어들여 코인을 팔면, 모집책은 수당이나 자동차 등의 선물을 받는다. 이를 사진으로 찍어 올려 또 다른 모집책을 모으고, 그들이 다시 사기를 치면서 돈을 끌어모으는 방식이다. 지난해 미국 투자회사 비트커넥트는 모집책들을 통해 ‘월 40%’의 수익을 약속하며,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 넘게 끌어모았다. 모집책들은 주로 유튜브를 통해 홍보했고, 실적이 우수한 모집책은 태국 방콕 여행이나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다. 최대 260만달러 수수료를 챙긴 모집책도 있었다. 하지만 투자에 실패해 투자금 대부분 날리게 됐다. 그러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투자모집책들이 브로커로 정식 등록하지 않는 등 규정을 위반했다며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주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나 머스크인데...”

유명인으로 속여 가상 화폐 투자를 유도하는 사기에도 넘어가는 사람들이 꽤 된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따르면 2020년 10월부터 작년 3월까지 접수된 가상 화폐 사기 사례 중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사칭하며 돈을 불려주겠다는 말에 속아 잃은 돈이 200만달러나 된다. 억만장자 머스크가 한가롭게 가상 화폐 투자를 상담해줄 리가 만무한데도 실제로 당하는 사람이 꽤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FTC는 “사기꾼들이 유명인사 트위터 계정의 이미지와 이름을 거의 똑같게 만들고, 피해자에게 접근하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속기 쉽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중장년층이 점점 코인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사기 피해가 더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무법인 유스트 배창원 변호사는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보통 그럴듯한 전단이나 인터넷 광고를 보고 투자하는 사례가 많다”며 “비트코인처럼 널리 알려진 코인이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잡코인으로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꼬임에 빠졌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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