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사태, 심층분석]⑤'규제공백'이 키운 몰락…미국부터 규제 속도낸다

박현영 기자 2022. 11. 1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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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공백'이 피해 키워…美 SEC·CFTC, 가상자산사업자 규제 시동
규제 마련 가속화에 '크립토겨울' 장기화될 듯

[편집자주] 연초만해도 '코인계의 JP 모건', '코인계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며 전세계 가상자산 업계를 쥐락펴락하던 샘 뱅크먼-프리드가 이끄는 'FTX 제국'이 한순간에 몰락했다. 고작 서른살의 나이에 156억달러(20조원)에 달하던 그의 자산은 하루 아침에 휴지 조각이 됐다. 영국의 권위있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과도한 레버리지△위험한 베팅 △ 부실한 담보가 원인이라고 짚었다. 전통적인 금융업에서도 늘 있어온 문제점들이다. 탐욕으로 얼룩진 FTX의 몰락은 지난 5월 테라·루나 사태에 이어 가상자산 업계의 신뢰도에 또 다시 치명타를 가했다. FTX 사태의 의미와 향방을 심도있게 짚어본다.

초대형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최고경영자 (CEO) 샘 뱅크먼 프리드와 FTX의 로고. 지난 11일(현지시간) FTX 그룹 내 130개 회사가 미국에서 파산 신청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FTX의 붕괴는 미국 내 가상자산 규제 마련을 위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크립토 맘'으로 불리는 헤스터 피어스(Hester Pierce)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이 코인데스크TV와의 인터뷰에서 전한 말이다.

'FTX 사태' 이후 각국 규제당국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에선 SEC는 물론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임원들이 선제적으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는 모양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의회 재무위원회가 가상자산 관련 세션을 개최, 바이낸스 및 리플의 경영진으로부터 FTX 사태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국내에서도 국민의힘 정책위원회와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가 간담회를 개최, FTX 사태에 관한 전문가들의 분석과 민간 기업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처럼 FTX 사태가 야기한 가장 큰 파급효과는 규제 가속화로 예상된다. 특히 가상자산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가상자산사업자를 규제하기 시작하면 상반기부터 이어진 '크립토 겨울'이 길어질 공산이 크다.

◇FTX 사태, '규제 공백'이 피해 키웠다

FTX의 자체 토큰 FTT가 폭락하기 시작한 날부터 FTX가 파산을 신청한 날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일이다. 이 5일 만에 초대형 가상자산 거래소가 몰락하기까지 그 어떤 제재 장치도 없었다. 규제 공백이 피해를 키운 셈이다. 규제당국이 FTX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인지한 이유다.

현재 FTX는 이용자들의 가상자산 출금을 차단한 상태다. 즉, 이용자들은 FTX에 자금이 묶여 있다. 그럼에도 규제당국이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없다. 미국에선 은행이 파산할 경우 고객 예금은 보호받을 수 있게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지원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는 예외이기 때문이다.

또 FTX 사태는 하나의 위기가 전체 시스템의 붕괴로 번진 사례다. FTT의 가격이 폭락하면서 거래소 전체가 무너지고, 나아가 가상자산 시장이 침체된 것이다.

전통 금융 시장에선 은행의 부실 채권이 금융시장 불안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자본비율 등 일종의 제재 장치를 두고 있다. 각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하는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해 자금위기 문제를 대비한다.

반면 미국 가상자산 시장에는 이런 제재 장치가 없다. 거래소 토큰 가격의 하락이 거래소의 파산으로, 가상자산 시장의 불안으로 번질 수 있었던 배경이다.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 블록체인 기업 리플, 서클 등의 대표들도 이번 사태에 미국 규제당국의 책임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들은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상원의원의 트위터에서 SEC의 모호한 규제가 기업과 투자자들을 해외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미국, 가상자산사업자 규제 시동…CFTC 영향력 확대

파산보호 신청한 FTX의 로고 ⓒ 로이터=뉴스1

이에 FTX 사태가 규제 마련을 더욱 부추길 것이란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부터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FTX의 본사는 바하마이지만 대표를 역임했던 샘 뱅크먼 프리드(Sam Bankman-Fried) FTX 창업자가 미국인인데다, 미국 법인인 FTX US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SEC는 프리드 창업자의 증권법 위반 혐의를 조사 중이다. 블룸버그는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 SEC가 FTX와 FTX US, 그리고 알라메다리서치를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FTX의 파산에 프리드 창업자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조사의 핵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 금융당국과 미국 법무부 등도 나섰다. 캘리포니아주 소속 '금융 보호 및 혁신부(DFPI)'는 공식 성명을 내고 FTX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또 코인데스크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는 최근 바이낸스에 FTX 내부 정보를 요청하고, 조사를 위해 SEC와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CFTC는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로스틴 베넘(Rostin Behnam) CFTC 위원장이 직접 "FTX US 파생상품(구 렛저X)는 CFTC에 의해 규제되기 때문에 FTX 그룹 파산 명단에서 제외된 것"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미국 상원이 가상자산사업자 규제에 CFTC가 관할권을 가지는 '디지털상품소비자보호법(DCCPA)'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DCCPA의 핵심은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등을 '디지털 상품'으로 분류하고 디지털 상품 브로커, 수탁업체, 거래 플랫폼 등을 '디지털 상품 플랫폼'으로 묶는 것이다. 이 디지털 상품 플랫폼은 CFTC에 등록하고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CFTC가 본격적으로 가상자산사업자를 규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금융감독분석원(FIU)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쟁글 리서치는 "CFTC는 지난 9월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애플리케이션 '비제로엑스(bZeroX)'에 벌금을 부과했다. CFTC가 DCCPA 없이도 이미 가상자산 플랫폼들을 처벌하고 감시할 법적 근거가 있다는 뜻"이라며 "DCCPA가 통과된다면 CFTC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규제 마련은 가속화, 크립토 겨울은 장기화

이처럼 FTX 사태로 규제가 더욱 본격화됨에 따라 한동안 이어졌던 ‘크립토 겨울’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테라와 달리 FTX는 계열사도 130곳에 달하며, 여러 벤처캐피탈 및 금융기관과도 연관된 업체였다는 점에서 규제 마련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세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태는 크립토(가상자산) 업계에 국한되지 않고 기존 금융권까지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테라 사태보다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은행, 벤처캐피탈과 연결고리가 많기 때문"이라며 "이로 인해 규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FTX 파산 이후 SEC, CFTC 이외에도 많은 기관들이 규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5월 '테라 발' 유동성 위기에 이은 두 번째 유동성 위기로 한동안 '크립토 겨울'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예측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도 지난 11일 보고서를 통해 "FTX 사태는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또 하나의 사례로 기억될 것"이라며 "싱가폴의 테마섹,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등 큰 자금이 FTX에 투자되었던 만큼 파급효과는 클 것이고, 규제 및 제도화의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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