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이렇게 엉터리일줄은”...새 CEO가 혀 내두른 이유는

김덕식, 이상덕 2022. 11. 1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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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 청산인 FTX 문건 보더니...“전례없는 파국”
계열사 통해 CEO·측근에 5조 대출
남아 있는 정확한 회사기록 없어
고객 자금 유용 숨기기에 급급
준비된 직원 명단 조차도 없어
사임 발표한 FTX 전 최고경영자 [사진 = 연합뉴스]
“40년 구조조정 경력에서 이렇게 완전한 기업 통제 실패는 본 적이 없다.”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재무 정보를 샅샅이 살펴본 존 레이 FTX 새 최고경영자(CEO)가 혀를 내둘렀다. 존 레이는 2001년 회계 부정 사태를 촉발한 에너지 기업 엔론을 관리·감독한 것으로 유명한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파산법 11조(챕터 11)에 따라 파산보호를 신청한 존 레이 CEO는 이날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제출한 파산보호 관련 문건을 통해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파국적인 사례다. 엔론보다 더 심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여기처럼 신뢰할 만한 재무 정보가 전혀 없는 곳은 처음 본다”며 “FTX와 계열사 알라메다 리서치의 대차대조표의 정확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위태로운 시스템, 해외 당국의 잘못된 규제·감독부터 경험이 없고 세련되지 못한 데다 위험해 보이는 극소수 개인들의 손에 집중된 회사 통제권까지 이런 실패는 전례가 없을 정도”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처럼 존 레이가 혀를 내두른 이유에는 △ 고객의 자금을 유용했지만 이를 숨기고자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했고 △ 회사 자금을 직원들의 주택과 그 밖의 개인용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했으며 △ 회사 직원들의 전체 명단조차 준비하지 않았으며 △ 중요한 회사 결정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었다는 데 있다.

특히 대규모 고객 자산 손실을 초래한 FTX 관련자들이 코인을 발행하는 투자 계열인 알라메다 리서치로부터 거액을 대출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알라메다 채권에 ‘관련 당사자’에 대한 대출금 41억달러(약 5조5000억원)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FTX의 전 CEO인 샘 뱅크먼-프리드가 10억달러, 뱅크먼-프리드가 대주주로 있는 페이퍼버드가 23억달러 규모였다. 또 계열사 FTX의 엔지니어링 이사인 니샤드 싱도 5억4300만달러를 대출했고, 계열사 FTX 디지털 마켓의 라이언 살라메 대표도 5500만달러를 대출했다. 회사 공금을 쌈짓돈처럼 썼다는 주장이다.

FTX는 아울러 미국프로농구(NBA) 마이애미 히트의 경기장에 대한 명명권을 비롯해 미국 코미디언 래리 데이비드가 등장하는 슈퍼볼 광고, 포뮬러원(F1) 후원에 1억3500만달러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가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일고 있다. 엔론 사태 이후 2002년 회계감사를 대폭 강화한 ‘사베인-옥슬리법’이 마련됐다. 가상화폐와 관련해 지난 14일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방준비제도 부의장은 “기존 금융 체계에 대한 규제처럼 레버리지, 유동성, 소비자자산 보호 부문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도 “주요 7개국(G7) 권고사항에 따라 가상화폐 규제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의회도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 규제론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레이 CEO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FTX 붕괴 위기와 관련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모든 문서들을 오는 28일까지 상원에 넘길 것을 요청했다. 워런 의원은 가상화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던 인물이다.

글로벌 3위 코인 거래소인 FTX는 이달 들어 곤두박질쳤다. 세계 1위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CEO 자오창펑이 FTX가 자체 발행한 코인 FTT 5억달러어치를 모두 매각하겠다고 밝히면서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또 코인 매체인 코인데스크가 알라메다 재무제표를 입수해 자산의 3분의 1이 FTT로 구성이 돼 있고 FTX와 코인 발행 계열인 FTX의 건전성이 매우 취약하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FTX가 고객 자금 100억달러를 알라메다에 대출한 사실까지 밝혀졌다. 자금 돌려막기를 했지만 막을 순 없었다. 이후 FTX는 파산을 신청했고 뱅크먼-프리드의 자산은 160억달러에서 순식간에 0달러가 됐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앞서 자오창펑 바이낸스 CEO는 “뱅크먼-프리드가 모든 사람에게 거짓말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고객 돈을 유용한 것은 사기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FTX의 충격파는 코인 업계로 확산하고 있다. FTX가 고객 자금을 동결하면서 이 곳에 돈을 맡겼던 상당수 코인 업체들이 함께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이다. 암호화폐 대출업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제네시스는 투자금 상환·신규 대출을 중단한 상태다. 제네시스는 투자자의 가상화폐를 담보로 대출해주는 업체로 코인 생태계의 핵심 기업이다. 데라 이슬림 제네시스 CEO는 “FTX 파산으로 유동성을 초과하는 출금 요청이 쇄도했다”면서 “신규 유동성 조달을 추진하고 있으며 다음 주 고객들에게 계획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네시스가 대출한 코인 잔액은 약 28억달러에 달한다. 특히 FTX 계좌에 1억7500만달러를 예치해 둔 상태인데 자금이 묶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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