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00만 이용자를 보유한 카카오톡에 탑재된 클립에는 출시 전부터 관심이 집중됐다. 침체된 블록체인 업계에 클립이 새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였다. 먼저 움직인 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지닥·데이빗·코인원 등은 클립 출시 전후로 클레이를 국내 상장하며 클레이 거래 붐을 조성했다.
·그라운드X 한재선 대표도 "클립을 출시하면서 가장 경계하는 건 토큰 시세차익에만 관심이 집중돼 클립보다 클레이가 부각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지갑인 '클립'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가상화폐 '클레이 투기'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 클레이튼은 애플의 운영체제 iOS 같은 생태계, 비앱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각종 앱(응용 프로그램)이다. 클레이는 그 앱들의 작동·보상 체계를 위한 화폐 중 하나고, 클립은 클레이 등 디지털자산을 소비자가 담아두거나 옮기는 역할을 한다.
·그라운드X는 '클레이튼 〉비앱 〉클립 〉클레이' 순으로 중요도를 강조하지만, 대중의 관심은 '클레이 〉클립 〉비앱 〉클레이튼' 순이다.
· 그런데 정작 클립을 쓸 데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가상화폐 보관 및 전송 외에 눈에 띄는 기능이 없다는 것. 클립 내에는 쇼핑·게임·소셜·건강 등 카테고리에 13개 비앱(서비스)이 포함돼 있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킬러 콘텐츠가 없고,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의 핵심인 보상 체계도 아직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업계에선 "제대로 된 비앱이 없는 상태에서 지갑(클립)을 급하게 출시해 코인(클레이) 값만 뛴 거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라운드X는 "대중이 클립을 익숙하게 써야, 비앱 등 관련 서비스가 늘어난다"고 반박했다. '닭(클립)이 먼저냐 달걀(비앱)이 먼저냐'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 장기적으로는 카카오의 여러 서비스도 클레이튼 기반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한 대표는 "카카오 공동체와 지속적으로 서비스 연동을 논의하고 있고,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는 곳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 하지만 시장은 달랐다. 클립 출시가 임박하자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그라운드X와 협의 없이 클레이를 상장했다.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블록체인에선 거래소들이 임의로 화폐를 상장할 수 있다. 그라운드X의 딜레마도 커졌다. 클레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가격이 급등할수록 규제 당국의 감시도 강화될 수 있기 때문.
· 최근엔 디지털자산 지갑을 만드는 자회사 '칼리브라'의 이름을 '노비(Novi)'로 바꾸고 페이스북 메신저·왓츠앱 등 페이스북이 소유한 메신저 서비스들과 연동했다. 암호화폐 '리브라' 출시를 위한 준비다. 페이스북 역시 고민은 미국·유럽 등 금융당국의 규제. 페이스북의 전략은 각국 규제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 텔레그램은 미국 정부의 규제에 막혀 지난달 3년간 추진하던 블록체인 프로젝트 '톤'과 암호화폐 '그램' 출시를 접었다.
· 카카오의 블록체인 운영 체계에 대한 비판도 있다. 탈중앙화라는 블록체인의 기본 개념과 달리 '거버넌스 카운슬'이라는 글로벌 대기업 중심의 합의체가 기술·사업 등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 이 카운슬에는 LG전자, SK네트웍스, 셀트리온, 아모레퍼시픽 등 30여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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